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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방안 중 하나로 '배임죄 폐지'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습니다. 재계는 과도한 형사 처벌이 기업인의 '경영 판단'을 위축시킨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정말 배임죄는 경영 활동의 족쇄일까요? 이 논란의 핵심과, 법조계에서 지적하는 진짜 문제를 자세히 파헤쳐 봅니다.

 

배임죄란?


🌍 "배임죄, 한국에만 있다"는 오해와 진실

배임죄 폐지를 주장하는 측에서 흔히 내세우는 논리 중 하나가 "배임죄는 한국과 일본에만 있는 특이한 법"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물론 명칭은 다르지만, 유사한 개념의 법 조항은 전 세계적으로 존재합니다.

  • 독일 형법: 'Untreue' (신뢰 위반, 배임)
  • 프랑스 형법: 'abus de confiance' (신뢰 남용)
  • 일본 형법: '背任' (배임)

 

미국 역시 '배임'이라는 단일 범죄는 없지만, 사기(Fraud)나 신인의무 위반(Breach of Fiduciary Duty) 등을 통해 유사한 행위를 처벌합니다.

진짜 문제는 법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적용 범위'입니다.

해외 법조 전문가들이 놀라는 지점은, 한국이 배임죄를 적용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100% 지분을 가진 주주(오너)가 자기 회사에서 돈을 가져다 쓴 경우를 한국에서는 '업무상 배임'으로 형사 처벌(집행유예)한 사례가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내 왼쪽 주머니의 돈을 오른쪽 주머니로 옮긴 것"과 같은 이 행위가 왜 민사적 책임을 넘어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입니다. 즉, 한국은 배임죄를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그리고 강력하게(형사 처벌로) 적용한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 '배임죄'란 무엇인가: 모호함의 덫

도대체 배임죄가 무엇이길래 이렇게 논란이 될까요? 형법상 배임죄는 횡령죄와 짝을 이룹니다.

  • 횡령죄(횡령): 타인의 '물건'을 보관하는 자가 그 물건을 빼돌리는 것. (대상이 '물건'으로 명확)
  • 배임죄(배임):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 재산상 이익을 취하고 본인에게 손해를 가하는 것. (대상이 '사무'로 불명확)

문제는 '사무(일)'라는 개념이 지극히 추상적이고 넓다는 데 있습니다.

단순히 '맡은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행위'까지 배임죄로 엮일 소지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회사원이 회사 일은 소홀히 하고 밤에 몰래 대리운전 알바를 해서 피곤에 절어 업무 성과가 나빴다고 가정해 봅시다.

  1. 임무 위배: 근로계약상 성실 의무 위반
  2. 본인(회사) 손해: 업무 성과 저하로 인한 손해 발생
  3. 제3자(본인) 이익: 대리운전으로 인한 수입 취득

이론적으로는 이조차 배임죄의 구성 요건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계약 위반'이라는 민사상 책임을 져야 할 사안이 '형사 처벌'의 영역으로 넘어오는 것입니다. 이 '모호함'이 바로 기업들이 경영 활동 위축을 주장하는 첫 번째 근거입니다.


🧑‍⚖️ '경영 판단' vs '계열사 부당 지원'

그렇다면 기업(경영자)들이 배임죄 폐지를 외치는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요? 법인카드 유용이나 직원의 태만 같은 사소한 문제를 방어하기 위함은 아닐 것입니다.

논란의 핵심은 바로 '계열사 간 부당 지원 행위'입니다.

한국의 재벌 구조에서 흔히 발생하는 사례입니다. 그룹 회장의 지시에 따라, 상장사인 A사가 비상장사인 B사(주로 회장 일가 지분이 높은)를 지원하는 결정을 합니다.

  • A사는 손해를 봅니다. (A사 소액주주들도 함께 피해)
  • B사와 B사의 지분을 가진 회장 일가는 이익을 봅니다.

검찰은 이를 A사 이사진의 '업무상 배임'으로 기소합니다. 하지만 기업 측은 "그룹 전체의 이익을 위한 합리적인 '경영 판단'이었을 뿐"이라고 항변합니다.

'경영 판단의 원칙'이란, 이사가 선의를 가지고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신중하게 결정을 내렸다면, 그 결과가 회사에 손해를 끼쳤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법리입니다.

하지만 이 원칙은 '선의'를 전제로 합니다. 회장 일가의 사익을 위해 A사 주주들을 희생시킨 것이 과연 '선의'의 경영 판단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치열한 법적 다툼이 발생합니다. 결국 재계가 원하는 것은, 바로 이 '계열사 지원' 행위를 배임죄의 처벌 대상에서 제외해 달라는 요구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 왜 형사 처벌에만 의존하게 되었나?

이런 부당 지원 행위가 나쁘다는 것에는 대부분이 동의합니다. 그렇다면 왜 유독 '형사 처벌'인 배임죄로만 다스리게 되었을까요?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요?

현재 이러한 행위를 규율하는 수단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하지만 두 가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규제 수단 현황 및 문제점
1. 민사 소송 (주주대표소송) 😥 사실상 무용지물입니다.

주주가 소송을 제기해도, 결정적 증거(내부 자료)는 모두 회사에 있습니다. 회사가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주주가 패소합니다. 또한, 주주가 승소해도 배상금은 회사가 받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할 동기 자체가 부족합니다.
2. 공정거래법 (부당 지원 규제) 📉 입증의 한계가 명확합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부당 지원'을 입증하려면, '공정한 가격'이 얼마인지를 먼저 산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SI(IT 용역) 거래나 인력 지원 등은 객관적인 시가를 산정하기가 극히 어려워, 공정위가 법원에서 패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3. 형사 처벌 (업무상 배임죄) 👮‍♂️ 유일하게 작동하는 억제 수단입니다.

민사와 공정위가 제 역할을 못 하는 상황에서, 경영진이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징역형'이라는 형사 처벌만이 사실상 최후의 보루로 남아있습니다.

 

 

 

대장동 일당 전원 법정구속…재판부 "배임죄 폐지시 부작용"(종합)

이재명 대통령이 성남시장이던 2014~2015년 불거진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사건 피고인들이 전원 법정구속됐다. 피고인들의 특경법상 배임이 아닌 형법상의 업무상 배임죄를 인정한 재판부는

v.daum.net

 


💡 '폐지'가 먼저일까, '보완'이 먼저일까?

이것이 바로 배임죄 폐지 논란의 딜레마입니다.

만약 지금 당장 배임죄를 폐지하거나 대폭 축소한다면, 위 표에서 보듯이 '규제 공백'이 발생합니다. 부당 지원 행위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억제 수단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선후 관계'가 바뀌었다고 지적합니다. 형사 처벌이 문제라면, 형사 처벌을 대체할 '민사적 구제 수단'을 먼저 강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핵심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이 바로 '디스커버리(Discovery)' 즉, '증거개시제도'의 도입입니다.

  • 현재 한국의 민사소송: 주주(원고)가 회사(피고)에 "내부 자료를 달라"고 요청해도, 회사가 "영업 비밀이다"라며 거부하면 그만입니다. 증거가 없는 원고는 패소합니다.
  • 미국의 디스커버리: 재판 과정에서 양측은 서로 관련된 증거를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합니다. 만약 회사가 증거를 숨기거나 제출을 거부하면, 그 자체로 '패소' 판결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디스커버리'가 도입되어 주주대표소송이 활성화된다면, 경영진은 굳이 '형사 처벌'이 아니더라도 막대한 '민사 배상'의 책임을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배임죄 논란의 올바른 해법은, 무작정 형사 처벌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민사 소송 시스템(디스커버리)을 먼저 튼튼하게 보완하여 규제의 균형을 맞추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 '배임죄 폐지' 관련 FAQ

Q1. 배임죄는 정말 한국에만 있는 법인가요?

A1. 아닙니다. 독일, 프랑스, 일본 등 많은 국가에 유사한 법이 존재합니다. 다만, 한국처럼 '민사적' 문제까지 '형사 처벌'로 다스리는 등, 법의 적용 범위가 매우 넓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입니다.

Q2. 배임죄와 횡령죄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요?

A2. 횡령죄는 '물건'을 빼돌리는 것이고, 배임죄는 '임무(일)'를 위반하여 손해를 끼치는 것입니다. '물건'은 명확하지만 '임무'는 추상적이어서 배임죄의 적용 범위가 훨씬 모호하고 넓습니다.

Q3. 기업들이 배임죄 폐지를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요?

A3. 표면적으로는 모호한 법 조항이 경영진의 '경영 판단'을 위축시킨다는 것이지만, 핵심적으로는 '계열사 간 지원 행위'가 업무상 배임으로 처벌받는 것을 방어하려는 목적으로 해석됩니다.

Q4. 배임죄가 폐지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될까요?

A4. 의견이 엇갈립니다. 재계는 경영 불확실성이 해소되어 '플러스 요인'이라고 주장합니다. 반면, 법조계 일각과 시민단체는 유일한 억제 수단이 사라져 지배주주의 사익 추구가 심해지고, 이는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Q5. 배임죄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디스커버리(증거개시제도)'가 무엇인가요?

A5. 민사 재판 과정에서 소송 당사자들이 서로 가진 증거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는 제도입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소액주주들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때 증거 확보가 쉬워져 민사적 견제 장치가 강력해질 수 있습니다.


(면책 조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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